정치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었습니다.

천백십일 2011. 12. 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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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29일, 서울중앙지법은 한국전쟁 중 벌어진 '고양 금정굴 민간인 학살사건'의 희생자 유족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1억원을 배상하라." 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지난 2007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이 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해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판단. 유족에 대한 사과와 명예회복, 유해 봉안, 위령시설 설치를 국가에 권고한 이후 나온 손해배상 청구 입니다.

한국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0년 인천 상륙 작전으로 서울 수복 이후, 동년 10월 고양시에서 일산경찰서와 치안대, 우익단체에 의해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탄광용 만들어진 금정굴에서 학살된 인원은 대략 400명으로 추산 되어집니다.


당시, 학살의 이유는 북한군 점령기간동안 북한 공산당과 인민군에 동조, 부역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이들 중 인민군의 강압에 의한 부역자, 가족 중 좌파 이념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는 물론 이념이 다른다는 이유,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희생의 당한 이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한국전쟁을 거치면 강화된 반공 이념으로 인해, 40여년 가까이 쉬쉬 되어졌고, 그들의 유해 또한 유가족이 수습하지 못하고 금정굴에 남겨졌습니다. 이후 한국의 민주화로 인해, 당시 사건을 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여 유해 발굴을 시작하여, 유해 160여구를 수습하였지만 신원확인 문제와 유해 안치 문제로 인해 서울대학교 병원에 남겨졌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죽음이 고양 뿐만 아니라 전국에 걸쳐 진행되어졌다는 것 입니다.

해방 직후, 남한에 있는 좌익과 부역자를 관리한다는 목적에 따라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보도연맹'이 학살 피해의 당사자들 입니다. 한국 전쟁 전후, 몇만에서 몇십만의 민간인이 좌익으로 몰려 학살을 당했습니다. (연구자에 따라 수치의 차이를 보이고 있음.)

보도연맹은 좌익 성향의 인사와 그의 가족은 물론, 최근 미디어 나오듯 쌀 혹은 밀가루를 준다는 말에 의해 부역을 하거나 공산당 명부에 도장을 찍은 사람까지 포함되었습니다. 이들은 전쟁 전 치열한 이념 전쟁 속에서 좌익으로 규정 당하였고,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반공 운동에 참가하였습니다. 더욱이 보도연맹은 정부 주도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단체에 신뢰를 가지고 적극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자 정부는 이들의 기대와 달리, 보도연맹원을 위험인물로 인식하여 마구잡이로 학살하였습니다. 이 학살에는 경찰, 보수 청년단, 우익 단체는 물론 군까지 참여하여 진행되었습니다.

이들은 전쟁 직후, 전쟁 전부터 실시해온 보도연맹원 소집 훈련을 빙자하여 사람을 모아, 산과 계곡, 바다에서 학살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런 억울한 죽음은 앞서 설명한 고양 금정굴 사건과 같이, 전쟁이후 정치 사회적으로 뿌리 내린 반공 이념에 의해 숨겨지고 잊혀져왔습니다.

왜 이들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그조차 숨겨져 왔을까요? 바로 이념입니다. 이념이란 국가적 논리 앞에, 이들은 무기력하게 죽음을 당하고 피해자는 입이 막아졌습니다. 당시 해방공간에서 필수적인 과거사 청산, 친일파 청산은 이념논리에 의해 뭍히게 되었고, 대신 좌익의 허울을 가진 이들을 학살한 것 입니다. 바로 이념, 국익, 국가라는 개념때문에..

국가의 구성 요소인 국민. 국민이 국가에 의해 피해를 입고 목숨을 잃는다면, 과연 그 국가가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요?

경제 불황의 환경 속에, 국익이란 개념이 강화되는 최근의 사회..우리는 한번쯤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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